슈투트가르트 21(S21)

슈투트가르트 21(이하 S21)이란 본래 독일철도공사(Deutsche Bahn)와 슈튜투가르트 시가 공동으로 추진한 초대형 도시개발사업을 말한다. 현재 공사가 진행중이며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말에 준공될 예정이다.

이 사업에 대한 반대운동이 17년 동안 진행되어 독일시민저항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공공참여에 대한 범사회적 인식을 돈독하게 만든 중요한 사건이며 공공참여란 단어가 만구에 회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시민저항운동 S 21의 결과로 슈투트가르트가 위치해 있는 바덴-뷔르렘부르크 주의 정권이 바뀌는 결과를 초래했다. 바덴-뷔르렘부르크 주는 독일 남부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독일연방 출발 이래로 보수당이 장기집권 했었으나 이 사건으로 2011년 선거에서 녹색당이 집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011년 프로젝트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아쉽게도 친프로젝트 세력이 과반수를 넘어 무산되었다.성패와는 관계없이 S21 저항운동은 수많은 여파를 불러왔다. S21 저항운동은 반핵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프랑크푸르트 소음 반대운동과도 연결된다. 이들의 영향이 유럽 전역에 확산되면서 이탈리아, 프랑스 루마니아 등지에서도 인프라시설공사에 대한 반대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S 21

S21 프로젝트는 슈투트가르트 중앙역과 슈투트가르트-벤드링엔 Wendlingen / 벤드링엔-울름 Ulm 노선을 연결하는 대형 철도시설사업이다. 문제는 역사와 철로의 일부를 지하로 넣고 상부에 신도시를 건설하자는 의도였다. 이로써 기존의 지하철 노선이 크게 변경되고 일부 신설되어야 함은 물론 30 km 연장의 철로 터널을 설치해야 하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계획되었다. 1996년 프로젝트 출발과 함께 저항운동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슈투트가르트에 머물렀으나 2010년 전 독일에 확산되어 수 만명이 거리로 나서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에 찬반측의 공식 협상이 개최되었고 협상 장면이 인터넷과 TV에서 생중계되었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점은;

  •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 즉 공공참여가 실시되지 않았다.
  • 막대한 프로젝트 비용(가장 큰 관건이 되었음)
  • 미네랄생수원의 침해
  • 지하 중앙역의 비효율성 (현 16차선을 8차선으로 축소)
  • 문화재 보호와 계획절차상의 결함(고풍의 중앙역과 주변에 있는 궁원 등의 문화유산이 훼손됨.)
  • 철도 노선보다는 중앙역을 지하로 보내고 지상 공간에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는 의도가 더 크다는 점 (현재 공사 중).
  • 도시개발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대한 확신 없이 출발

지상중앙역21 이라는 명칭으로 대안이 만들어져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범시민저항운동 S21

슈투트가르트 궁전 앞의 고목 벌목을 앞두고 벌어진 초대형 데모.. 2010.9.10. 사진: Marco Bartoli. public domain.

<검은 목요일> 2010년 9월 30일 목요일 밤에 번개 작전으로 궁원의 나무를 벌목했다. 경찰들이 벌목현장을 지키고 있다. 사진: Musskiprozz. License: CC BY-SA 3.0

 

S21은 전형적인 범시민저항운동으로서 일부 저항세력이나 환경운동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선두가 되어 각계각층의 남녀노소가 고루 참가한 케이스다. 이들을 총칭하여 <S21 저항세력>이라고 하며, 수많은 그룹을 결성하여 움직이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반 S21 활동연대 Aktionsbündnis gegen Stuttgart 21>와 <공원지키미Parkschützer>등이다.

2010년 베를린의 사회과학연구센터의 디터 루크트 박사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연령분포는, 40~60대가 62%, 40대 이하가 23 % 였으며 직업별로 보면 놀랍게도 공무원, 대학교수, 회사원 등 고급 직장인이 43%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그 중 공무원이 29.83%), 가정주부가 14 %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참여 동기를 보면 탄원서가 기각된데에 분노하여 뒤늦게라도 참여했다는 사람들의 비율이 31.2%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15.8%는 문화재격 중앙역을 철거하는 것이 직접적 동기가 된 것이였다.

반대이유의 순위를 보면:

  • 천문학적으로 높은 공사비용,
  • 금융권과 건축업에서 취할 부당 이익,
  • 프로젝트 수행 절차에 나타난 민주성 결여 등이다.

이들의 활동 방법은

  • 국민투표 청원Bürgerbegehren/Volksbegehren : 독일의 직접민주주의 도구 중 하나로 행정기관에 탄원서를 넣어 직접 투표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다만 개인이 단독으로 탄원서를 제출할 수 없으며 일정한 숫자의 유권자가 함께 서명하여야 한다. 최소 서명자 수는 각 지자체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어 있다. (총 유권자 수의 3%~15% 까지) 각 행정구역별로도 탄원이 가능하며 연방차원 혹은 주 차원의 탄원도 가능하다. 이는 탄원의 대상이 되는 계획이나 정책을 누가 수립하는 가의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각 지자체 법에서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 탄원서 제출: 기본법 제17조에 의거 국민 누구나가 각 해당관청에 청원서를 제출할 수 있다.
  • 정보대 Info-stands 설치
  • 정기데모: 매주 월요일 데모 개최(2018년 8월 현재 여전히 개최되고 있다.)
  • 평화시위

도시개발계획 도면. 그래픽: Stoeffler. modified by Thirdspace Berlin. Public Domain.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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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프로젝트 저항운동
1994

 

 

프로젝트 설명회:
설명회를 열었으나 벼락치기 수법으로 진행시켜 아무도 프로젝트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
1995.11

 

 

 

 

Stuttgart 시와 독일철도사 간의

기본계약 체결:

  • 프로젝트의 개략적인 내용
  • 사업기간
  • 사업비용(철도사+연방+BW주+슈투트가르트 시에서 공동부담)
1996

 

 

 

 

 

 

S21 없는 슈투트가르트의 삶
서명운동:
  • 13,000 개의 서명 취합 제출
  • 안건: 슈투트가르트 시의 기본법 개정프로젝트에 대한 직접 투표의 법적 근거 마련

환경연합: 슈투르가르트 복구
대안 K21 개발: 기존의 지상 중앙역을 재생하여 계속 활용하자는 의견

1997.11

 

건축현상공모:
Christoph Ingenhoven 당선
지하중앙역 실시설계
2001.10 계획확정절차 시작
2004.07 프로젝트 예산 상향조절
2006.04 BW의 최고행정재판소: 3개의 소송 기각
2007.12

 

 

 

시의회에서 탄원서 거절

 

 

 

슈투트가르트 시의회에 국민투표를 위한 탄원서 제출:

정족수보다 3배가 많은 67,000 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

2008.08 주정부는 예산이 3십억 유로로 증가했음을 발표
2009.04

 

시장, 철도사장, 연방교통부장관;

재정협정서에 서명

2009.11~ 월요 정기 데모 출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음
2009년 지방선거: 녹색당의 승리
2010.02 착공
2010.07 노선공사비 상향조정
2010.08 연방환경청의 전문가감정서:
공사비가 예상보다 훨씬 증가할 것으로 예측
2010.08 구 중앙역의 북쪽건물 철거 시작
2010.09.30.~10.01 “검은 목요일”
궁원 벌목 시작
대규모 대모: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사상자와 부상자 속출
~2010.10.09 이후로 거의 매일 데모
매일 십만명 이상 참가
2010.10.15 구 기민당수 하이너 가이슬러 중재 시작
2010.10.22.~11.27 모두 8회에 걸친 중재모임에서 양측이 열띤 토론
2010.10.27 데모진압 경찰에 대한 수사 시작
2010.11.30.

 

 

하이너 가이슬러의 결론:
  • S 21에 녹색 신호를 보냄
  • 다만 신축되는 지하 중앙역이 러시아워에 체증없이 운행될 수 있는 지 재검토 할 것을 전제로 함
2011.01.10 중재기간에 멈추었던 공사 재개 중재기간에 멈추었던 데모 재개
2011.03.27 주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이 승리
BW주 역사상 최초로 녹생당 주지사
2011.03.29 녹색당의 요청으로 공사 중지.
2011.06.10. 공사 재개 데모 재개
2011.07.21.

 

스위스의 교통 전문감정소에서 S 21이 교통체증을 감당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감정서 제출 (“스트레스 테스트”)
2011.07.29 스트레스 테스트 감정서 공청회
2011.09.28.

 

주의회에서 직접투표 결정:
안건은 슈투트가르트 시가 재무이행협약에서 탈퇴할 것인가의 여부
2011.11.27.

 

국민투표:

부결됨 (58.8%)

과반수 이상이 계약 이행을 원함.
계약에서 탈퇴할 경우 추징금이 너무 높다는 이유도 한 몫을 했음.
2012~ 현재

 

 

공사 진행 중

 

 

월요일 데모를 위시한 저항운동 계속 진행 중.
187개의 인터넷 저항 사이트 계속 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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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베를린 일간지 타게스슈피겔 <슈투트가르트 21을 둘러싼 긴 싸움> Tagesspiegel/Politik/Chronologie Langer Streit um Stuttgart 21

기타 특이 사항

저항나무

궁원에서 데모가 끝난 후 연극 배우 발퍼 지틀러Walter Sittler가 나무 한 그루를 심은 것이 계기가 되어 향후 이 나무가 데모객들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찬 프로젝트 팀이 뽑아버린 것을 거듭 다시 심었다. 최종적으로 2012년 7월에 심은 것을 포크레인이 밀어냈다. 도저히 자연과 식물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바덴 뷔르템베르크 사람들의 소행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슈바빙 식 <딴지>작전

연극연출가 폴커 뢰쉬Volker Loesch와 연극 배우 발퍼 지틀러의 아이디어에서 출발. 매일 저녁 일곱 시에 일 분간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한다. 2010년 7월 28일에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며 곧 전 도시로 확산되었다. 일정한 만남의 장소가 즉흥적으로 결정되어 그 자리에 모여서 소리를 지르고 호루라기를 불며 발을 구른다. 스마트톤 앱도 개발되었고 슈투트가르트 뿐 아니라 키르히하임, 베를린, 브레멘까지 번졌으며 뉴욕에도 수출되었다. 이 스마트폰 앱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사장 휀스

공사장 휀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포스터, 쪽지, 탄원서 등을 빼곡하게 붙였다. 이 쪽지들은 민속박물관에서 수거하여 전시회를 개최한 후 아카이브에 보관하고 있다.

© Musskiprozz.  License: BY-SA 3.0

시민불복종

바리케이드 치기, 나무 가지 위에 올라가 진치기 등 의도적으로 불법행위를 함으로써 저항정신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데모송/심볼/

데모송 : “Heho, nobody home” 가사만 바꿈.
심볼

반향

2012년 12월 22일 수십명의 공원지키미 연대의 행동대원들이 시청을 점거하고 성명서를 낭독한 뒤 조용히 퇴각한 적이 있다. 성명서는 그간 약 17년에 걸친 갈등과 분쟁의 원인들을 요약한 것이다 :

  • “도시의 훼손을 당장 멈추고 국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의회를 세워라”
  •  “그간의 쓸모없는 대형프로젝트 S 21에 대한 저항운동은 슈투트가르트의 민주적 사회구조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 “반대의견을 가진 전문가 감정서들을 무시하는 정부의 처사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저항사이트

모두 187개의 저항사이트가 개설되었다. 2018년 8월 현재까지 운영 중이며 2009~2014 사이에 모두 2000 개 이상의 영상자료가 만들어졌다. 그중 특기할 것은 S 21 인터넷 사전 WikiReal이다. 이 Wiki 사전은 저항동가 중 한 명인 뮌헨 출신의 물리학자, 시스템분석학자 크리스토프 엥겔하르트 박사가 주동이 되어 대학교수, 전 철도청장, 수학자 등이 모여 운영하고 있다. WikiReal은 S 21을 위시한 대형프로젝트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특기할 것은 사업 수행자들이 제출한 전문가 감정서를 낱낱이 해부하여 틀린 점을 조목조목 밝혀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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