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탈핵운동

개요

1970년대에 시작된 독일의 반핵운동은 그 철저함과 지속성으로 보아 역사상 독일시민사회 최대의, 최고 지식수준의 공공토론을 이끌어 낸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1]Peter Leusch, Kann Blockieren Sünde sein, Geschichte der Anti-AKW-Bewegung, Deutschlandfunk-Aus Kultur-und Sozialwissenschaft, 2011.05.19. (Archiv)

독일반핵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각종 단체와 그룹에서 결국 반핵네트워크를 형성해 가며 확산되었다. 이들의 도구는 공공시위였다. 반핵이란 특정한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이나 특정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지구상에서 핵에너지를 완전히 포기하자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출발은 핵에너지의 민간이용이었으나 반핵운동자 대부분은 군사적 목적도 반대하였다. 그럼에도 반핵에너지 운동이 환경운동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면, 반원자력무기 움직임은 평화운동에 더욱 근접하기 때문에 이 두 움직임을 서로 구별하려는 경향이 있다.

독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환경연합과 단체, 즉 BUND, Robin Wood와 Greenpeace는 설립 당시부터 핵에너지이용을 원칙적으로 반대했다.


 

연혁


연도사건내용
1955년원자력평화이용국제회의 (일명 “제네바회의”)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Peaceful Uses of Atomic Energy
독일연방 (서독) 핵에너지부 설립
1956년 독일연방 (서독) 핵위원회 설립핵발전소 설립에 대해 지자체별로 상당히 거센 반대운동이 일어남.
뉘른베르크의 베르톨즈하임Bertoldsheim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그 대신 군드레밍엔Gundremmingen에 설립됨.
1960년바이에른 주에 독일 최초의 핵발전소 “칼Kahl” 설립
1970~71년다수의 핵발전소 계획됨본격적인 반대운동 시작.
BW 브라이작Breisach 핵발전소 사건프랑스와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브라이작이라는 소도시에 계획된 핵발전소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어남. 프랑스 반핵운동가들도 합세.
반핵행진
65,000 건의 이의 제기로 무산되고
빌 Wyhl로 이전 계획
빌에서 더 큰 반발에 직면
1973/741차 석유파동의 결과로 핵발전소 설립에 박차를 가함.
1975BW주의 빌Wyhl핵발전소 공사부지 점령사건사업승인을 받아 공사를 진행하던 중 약 28,000명이 수개월간 공사장 점령
결국 발전소 운영허가를 받지 못해 불발됨.
반핵운동이 전 독일로 번지는 불씨역할
1975~반핵운동의 조직화/본격화독일연방환경시민단체연합
핵에너지에 대한 설명회 개최
계획절차에서 반대의견 제시 (주민참여)
헌법재판소에 소송
궐기대회
바리케이드/ 봉쇄 / 점령 / 시위 /데모 등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
보수적인 와인 농장주들과 축산업자들도 합세.
과격파들과 온건파들이 손을 잡은 특이한 사례
물리학자들도 합세 (Karl Bechert 1901-1981)
환경운동가, 튀빙엔 고교 교사 Hartmut Gründler 단식투쟁 시작빌 발전소 등 여러 곳에서 여러 번에 걸친 단식투쟁으로 반핵운동계의 전설이 됨.
1976핵에너지 시민과의 대화창구 설치건설계획 절차의 주민참여를 보완하는 기구로 정부에서 설립
별 큰 소득없이 닫힘.
당시 서독 정부는 핵에너지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주장
1977하르트무트 귄들러는 정부가 핵에너지에 대한 거짓 정보를 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완전한 진리를 투명하게 보여주라고 요구.
Hartmut Gründler 분신자살 당시 수상 헬무트 슈미트에게 공개서신을 보냈으나 수상이 대화 거부.
그 반향으로 지금까지 각을 세워 대립했던 여러 환경보호단체와 녹색당 등이 하나의 ‘전선’으로 결속됨.
세계생명보호연합World Union for Protection of Life 합세
Hartmut Gründler가 설립한 『생명보호를 위한 워킹그룹』은 이작도 존재하고 있음.
1977핵 폐기물 저장소 고어레벤Gorleben 사건 발발당시 동독과의 경계지역으로서 인구밀도가 상당히 낮은 것을 이유로 선정됨
계획이 알려지자 마자 반대운동 시작.
1977녹색명단 환경보호, 원자력반대 선거공동체 (GLU) 4개의 녹색리스트 관련 선거공동체 조성
이들이 통합하여 후에 녹색당 결성
1978의회에 돌입니더작센주와 함부르크 주의회선거에서 녹색리스트 당 대표가 각 1석씩 차지
1979미국 핵발전소 Three Mile Island Nuclear Generating Station에서 원자력사고 발생독일 내의 데모가 거세짐
니더작센주 벤드란드의 폐기물 재처리공장계획 수립
1979고어레벤 데모 본격화십만 명 이상이 트렉터 500대에 나눠 타거나 도보로 행진함.
니더작센 주 수상이 재처리공장 설립계획 취하함.
연방헌법재판소에서
1980녹색당 설립 반핵전쟁 단체 중 “녹색명단 환경보호Green List Umweltschutz”에서 출발
핵발전소 브록도르프 공사 재개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핵운동 벌어짐
1986소련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반핵운동이 독일 전역으로 확산됨
1992-1993
정당간 합의 핵에너지 포기에 대한 장기적 목표 수립
폐광 콘라드 사건 터짐잘츠기터Salzgitter에 있는 폐철광에 원자력폐기물 저장소 설치계획이 1975년부터 시작. (주민참여절차 포함)
1982년 [2]공간이용 적합성 검토에 관한 법 ROG 제3조 1항 6호 어떤 사업이 이에 해당하는…' class="encyclopedia">계획확정절차 시작
문선 결함으로 계획 재수립
1992년 9월~1993 3월까지 공청회 개최
약 250,000 건의 반대의견 제시됨.
2002년 사업 승인됨
담당행정재판소에 소송이 쇄도
2006년 소송 기각
2007년 연방행정재판소에 상소. 기각됨
시설의 결함 발견.
폐기물 수송계획 포기됨.
1998사민당 정권 출발 - 슈뢰더 수상바람의 방향이 바뀜.
2000핵산업계화의 협약 2000핵포기 목표가 수립되면서 반핵운동도 잠잠해짐
2010메르켈 내각의 반정핵포기 합의서 무효화함
핵발전계약을 8~14년 연장
반핵운동 재개클래식한 반핵운동가, 단체 외에 재생에너지사업분야가 합세
반핵/친재생에너지로 운동의 성격이 약간 조정됨.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커짐Stuttgart 21과의 연계성
2011년 3월일본 후쿠시마 사고 데모 재개
2011년 6월연방의회에서 원전포기 결의 (2020 까지)

전개


  • 초기엔 평화적인 토론
  • 1980년대에 급진적으로 변함. 발전소시설 파손, 수송기차, 전선 파괴 등
  • 1995년경 폭력시위가 극에 달함
  • 법정 소송이 차지하는 비율이 컸음.
  • 재생에너지, 에너지소비절감 등의 대안이 고려되고
  • 정당없는 선거단체, 의회진출 등을 통해 뜻을 이루려는 움직임 (“원자력 반대 선거 공동체(Wählergemeinschaft Atomkraft Nein Danke)”

선거공동체 혹은 유권자공동체 결성 (Wählergemeinschaften)


  • Grüne Liste Umweltschutz (GLU)
  • Grünen Liste Schleswig-Holstein (GLSH)
  • Grünen Aktion Zukunft (GAZ)
  • Aktionsgemeinschaft Unabhängiger Deutscher (AUD)
  • “Wählergemeinschaft Atomkraft – Nein Danke“ (WGA)

 

선거공동체 (유권자공동체)는 독일과 스위스의 독일어권에만 있는 제도로서 정당을 결성하지 않아도 유권자들이 연합을 결성하여 의회선거에 피선거자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다만 독일의 경우 지자체법에 의해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는 반면 스위스는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대개는 시민연대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으며 전문적인 정당과 스스로를 구분하기 위해 “자유 유권자”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법적 근거는 각 지자체 (코무네)에서 마련하고 있다. 지방선거에만 참여할 수 있다. 연방의회 혹은 주의회 선거에는 참여하려면 일정한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유럽연합의회에도 참가할 수 있다. 유럽연합선거법EuWG 제8조 1항에 의거 “기타 정치단체”로 정의된다. 지방정치 중, 소도시 등에서 큰 역할을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1. 독일자유유권자 연방연합 Bundesverband Freie Wähler Deutschland 으로서 정당은 아니지만 전국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특히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서 각 게마인데의회의 44%는 자유유권자들이 차지하고 있고 군의회의 24%를 차지한다.

2. 녹색당의 전신인 소위 말하는 “녹색명단”이다.

3. 브란덴부르크 주의 자유유권자동맹Allianz freier Wähler. 2004년도에 조직되었으며 브란덴부르크 주 2004년 주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0.94%를 차지하는 등 성과를 보였다. 의석은 차지하지 못했다.

4. 프로브란덴부르크/시민이 브란덴부르크를 구한다.Pro Brandenburg / Bürger rettet Brandenburg 역시 2004년 브란덴부르크 주 의회선거에 참가했다.

슬로건 / 심볼


  • 데모송 “He Ho, Nobody Home” 가사만 바꿈. 나중에 Stuttgart 21 데모에서도 불림.

 

영향력 / 파급효과


  • 1970년대 원자력프로그램의 축소를 가져옴
  • 1980년대 초에 수립한 계획에서 더 이상의 확장이 없음
  • 공사 및 가동 중단 (Wyhl, Kalkar)
  • 현재 가동 중인 모든 원자력발전소는 1975년 이전의 계획에 의해 설치된 것이며
  • 그 이후 3개소만 추가적으로 설치되었고 새로운 계획은 모두 무산됨
  • 핵에너지 분야에 결정적인 전환을 초래했고 재생에너지정책을 가속화함
  • 시민사회의 저항문화를 정립시킴
  • 환경정보에 대한 요구의 정당성

이슈


초기에 정부와 원자력로비에서 핵에너지의 효율에 대한 긍정적 정보만 흘림. 이에 반발하여 비판적인 서적들이 출판되기 시작.

  • 성장의 한계 Grenzen des Wachstums
  • 환경문제
  • 방사선으로 인한 인체와 건강에 대한 영향 등에 대해 수많은 서적 출판

 

© 써드스페이스 환경백과/독일의 탈핵운동

 

Related 표제어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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