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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온스 리그와 검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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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유럽 축구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올랐다. 축구를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독일에 살다보면 피해가기 힘들다. 남편이 열심히 챙겨보기 때문에 나 역시 덩달아 반쯤은 전문가가 된 것 같다.

도르트문트는 부상당한 선수들이 태반이라 요즘 “부상병 축구단”이라고 불린다. 절룩거리며 공을 차는 모습이 눈물겹다. 재정이 빈약한 관계로 뮌헨처럼 온 세계에서 최고의 축구선수들을 마구 사들일 여력이 없어서 그렇다. 도르트문트의 간판선수 레반도프스키가 다음 시즌부터 뮌헨에서 뛴다. 지난 해 괴체를 빼앗긴 후 이제 레반도프스키까지 팔려갔다. 도르트문트는 한국의 손흥민 선수를 ‘구입’하여 이에 대응했다. 갑부 축구팀 뮌헨과 가난한 도르트문트는 축구장에서만 숙적일 뿐 아니라 여러모로 좋은 대조가 된다. 펜들도 뮌헨파와 도르트문트파로 확연히 갈라져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자본가들의 뮌헨과 노동자들의 도르트문트로 구분된다.

실은 선수들 이적 소식이 들릴 때마다, 그리고 권리금의 액수를 들을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 진다. 사천팔백만 유로, 팔천만 유로 등 천문학적 숫자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한화로 환산해보니 594억, 1300억 이런 수준이다. 스포츠가 아니라 축구 산업이라는 증거일 텐데 여기서 사고파는 가장 비싼 상품이 선수들인 모양이다. 도르트문트도 지난해에 괴체를 뮌헨에 팔고 그 권리금을 받아 빚을 탕감했다고 한다. 선수들이 정당하게 보수를 받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구단이 이렇게 높은 권리금을 받는 것이 과연 인신매매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이럴 때면 뜬금없이 고대 로마의 검투사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른다. 축구장에서 광분하는 관객들과 공차는 기계가 된 선수들을 보면서 내 맘대로 그들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로마식으로 바꿔놓고 과연 그 때와 크게 달랐을까? 이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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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레반도프스키 도르트문트에서 뮌헨으로 이적.

로버트 레반도프스키 도르트문트에서 뮌헨으로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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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의례로 시작되었던 검투사경기가 인기를 누리게 되자 황제들이 제국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검투사경기를 이용했다. ‘민심을 달래고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볼거리’를 만들어 성대한 살생 잔치를 벌인 것이다. 시저는 “내 검투사들의 갑옷을 모두 은으로 만들어 입혔다.”라고 자랑했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검투사경기를 아예 황제의 특권으로 만들었다. 황제의 특별한 허락 없이, 혹은 황제가 지정한 기간 외에는 아무나 경기를 개최할 수 없게 하는 등 황제의 ‘독점사업’으로 만들었다. 수많은 검투사학교가 생겨나 황제의 경기를 위한 선수들을 배출해냈다. “나와 내 아들들과 손자들의 영광을 위하여…” 총 30회 이상의 경기를 개최했다며 “만 명의 검투사들이 아프리카의 맹수들과 싸웠고 모두 삼천 오백 마리의 맹수들이 죽어나갔다.”고 황제는 자신의 업적에 대해 회고했다. 다만 검투사들이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요즘엔 검을 휘두르는 대신 공을 차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매커니즘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선수들의 천문학적인 이적금이라든가 큰 경기의 중개 권리를 회사 하나가 독점하여 페이티비에서만 볼 수 있게 하는 것 등 축구는 이미 서민의 스포츠라는 본질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왔다. 이는 제국주의가 과거에 속한 것이 아니라 다시 우리의 미래가 되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또 하나의 신호이다. 무력이 아니라 재력과 정보체계에 바탕을 둔 전체주의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무력을 다시 동원할 수도 있음을 최근 여러 나라의 수장들이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 때처럼 황제들이 대중 앞에 나서서 자신의 영광을 자랑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왕관 없는 진짜 황제들이 배후에 숨어있다는 사실이 더욱 두렵다. 우리가 신형의 핸드폰과 자동차를 구매할 때마다,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페이티비에 푼돈을 지불할 때마다 글로벌한 전체주의로 한걸음씩 더 다가가고 있다. 소비가 불가능한 일부 계층이 사회의 밑바닥을 벗어나기는 불가능해졌다. 누구나 노력하면 잘 살수 있다는 신화는 늦어도 90년대에 효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얘기들이 요즘 다시 전개되고 있다.

다시 『글래디에이터, 영웅의 탄생』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은 시간문제임을 경고하는 영화가 최근에 만들어졌다. 헝거게임 3부작이 그것이다. 헝거게임 뿐 아니라 클라우드 아틀라스 등 최근에 만들어진 일련의 영화는 이제 환경문제를 별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글로벌한 전체주의와 같은 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영웅이 나타나면 순수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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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arator headline=”h3″ title=”써드스페이스 환경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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