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ps! It appears that you have disabled your Javascript. In order for you to see this page as it is meant to appear, we ask that you please re-enable your Javascript!

에너지 노예의 노예들 Energy Slave

[dropcap style=”default, circle, box, book”]어[/dropcap]제 라디오에서….
베를린 시의회에서 열렸던 별난 보고회에 대한 보도를 들었다. 만약에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된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라는 시나리오 하에 에너지기업과 안보기관이 상황 브리핑을 하고 비상대책을 발표했다. 아마도 지난달에 아들러스호프의 과학단지에서 반나절 동안 정전되었던 사건이 이번 보고회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던 것 같다. 변전실에 화재가 발생하여 합선이 되었었다는데 과학단지에 반나절 동안 전기가 끊겼으니 그날 어떤 혼란이 벌어졌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아마도 베를린의 학문과 기술이 세계적으로 반나절 뒤졌을 것이다. 경쟁에 이기려면 경쟁자들 연구실의 에너지 공급을 끊어버리면 되겠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베를린 경제법 전문대학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여섯 시간 이상 정전이 지속되는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이 병원의 중환자들이라고 한다. 수술을 못할 테니 그도 그럴 것이다. 산소호흡기로부터 모든 최신식장비가 전부 소켓에 꽂혀 있으니.

뉴스를 들으며 가장 먼저 걱정이 된 것이 컴퓨터와 냉장고였다. 물론 오랫동안 정전이 되면 라디오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지하철이야 운영이 안 되겠지만 버스는 다닐 수 있을까? 버스 운전사가 출근을 못해서 운행이 안 될지도 모르겠다. 학교도 모두 문을 닫을까? 슈퍼의 냉동식품. 냉장식품은 둘째치고라도 계산대가 작동을 안 할 것이니 쇼핑은 안 되겠고 비상식량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음악회는 어떻게 되나. 청중들이야 어두워도 상관이 없겠지만 연주자들은 악보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 지휘자가 보일까? 전기가 없던 시절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 때는 극장에 촛불을 켜고 음악회를 열었다는데 오페라나 교향곡의 연주 시간이 촛불 타는 시간에 맞추어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보통보다 2배 이상이 긴 바그너의 오페라를 연주할 때는 어떻게 했을까? 대형 초를 맞춤 제작했을까? 아니면 쉬는 시간에 하인들이 부지런히 초를 갈았을까.

베를린의 경우 전 도시가 정전이 되어도 8~10시간 내에 완전 복구가 가능하도록 준비가 되어 있단다. 그 말에 안심하기 보다는 어딘가 좀 섭섭했다. 전기가 끊어진 것을 계기로 다시 예전의 ‘미개’한 상태로 되돌아가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희망이 물거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모험이 되었을 텐데.

개인적인 불편보다 공공시설이 마비되는 것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문득 니코 페히 교수가 말했던 에너지노예Energy Slave라는 말이 생각났다. 에너지노예는 우리가 에너지의 노예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물론 무방하다. 그러나 본래는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가 맡았을 때 소요되는 에너지의 양”을 에너지노예라고 정의하고 있다. 복잡하게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만들어 낸 개념일 것이다. 최근에 만들어진 개념 같지만 실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이미 1940년, 미국의 비저니스트 건축가, 발명가, 작가, 공상가였던 버크민스터 풀러 Richard Buckminster Fuller (1895~1983)가 만들어 낸 말이다.

에너지노예라는 개념은 특히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산업국에서 사람의 노동생산성을 에너지양과 비교하는 데 쓰인다. 대개 한 사람의 일 년간 노동력을 에너지로 환산하면 880 kWh/a 수준이며 이는 기름 90리터를 태워서 얻는 에너지와 맞먹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를 직역하면 90리터의 기름 값을 치르고 일 년 내내 놀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게 에너지노예의 속성이다. 물론 매년 최소한 90리터 기름 값은 벌어야 한다. 내가 할 일을 기름을 대신 태워서 하고 남는 시간과 힘으로 전력을 다해 놀거나 아니면 전문업, 서비스업 등에 종사하여 높은 부가가치를 올리자는 게 목적이었다. 또 그래야만이 에너지노예를 계속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고 내가 에너지노예 덕에 창출한 부가가치가 많으면 그 만큼 더 많은 에너지노예들을 부릴 수 있다. 고대 로마의 귀족들의 지위가 노예의 숫자에 따라 판가름 되었듯이 현대인은 에너지노예를 얼마나 부릴 수 있는가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이제는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에너지노예를 포기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매달 의식주 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전기요금, 가스요금, 자동차 기름 값, 휴대폰 대금 등이 결국은 에너지노예를 먹여 살리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다. 무직자들도 기본적으로 에너지노예를 고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몸이 편해지고 시간이 자유로워진 것도 아니다. 게다가 늘 불안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게 현대인들이라고 페히 교수는 말한다. 정전이 되어 (혹은 에너지원이 모두 고갈되어) 에너지노예들이 모두 폐업을 해버리면, 속수무책이다. 에너지노예를 고용하기 위해 도리어 그들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이 번영 사회를 사는 우리들의 실제 모습이다. 어찌할 것인가.

[gap height=”30″][separator headline=”h3″ title=”써드스페이스 환경이야기”]

댓글 남기기